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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사라진 인민영수

연말이다. 올해 중국의 최대 행사는 지난 10월 열린 20차 중국공산당(중공) 전국대표대회였다. 블랙박스로 밀봉된 당 대회는 몇 가지 미스터리를 남겼다.   첫째, 이른바 ‘두 개의 확립(兩個確立·양개확립)’을 확립하지 못했다. “당은 시진핑 동지가 당 중앙의 핵심, 전당의 핵심 지위임을 확립했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했다.” 지난 2021년 11월 열린 중공 19기 6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6중전회) 결의문이다. 곧 ‘양개확립’은 시진핑 권위의 상징이 됐다. 5년 전 ‘핵심’ 타이틀을 거머쥔 18기 6중전회와 패턴이 같았다.   당 대회 1주일 앞서 열린 7중전회도 ‘양개확립’을 결의했다. 20차 보고와 당규정(黨章)에 무난하게 기재될 것이라는 예고 기사를 썼다. 하지만 폐막 후 발표된 문건 어디에도 ‘양개확립’은 보이지 않았다.   둘째, 인민영수(人民領袖)가 사라졌다. 31개 지방 당 대회 문건에 ‘영수’라는 호칭은 모두 36번 등장했다. “선견지명과 영수의 풍모”라며 치켜세웠던 차이치(蔡奇)는 서열 5위로 올라섰다. 중국 관찰자들은 중앙 당 대회 문건에 ‘인민영수’가 들어가리라 전망했다. 틀렸다. 이후 관영 매체에서 인민영수라는 표현이 자취를 감췄다. ‘대당대국(大黨大國)의 영수’가 나왔다.   셋째, ‘시진핑 사상’도 현상유지에 그쳤다. 30년 전 14차 당 대회 정치보고에 처음 등장한 ‘덩샤오핑 동지의 중국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 건설 이론’은 5년 뒤 15차 당장 수정안에 ‘덩샤오핑 이론’으로 압축됐다. 선례를 따라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는 열여섯 자가 ‘시진핑 사상’으로 압축될 것이라는 예측도 빗나갔다. 사상을 넘어 ‘시진핑 주의’까지 가는 길이 험난해졌다.   접견실의 용 조각 의자도 사라졌다. 시 주석은 지난 23일 중남해(中南海) 영대(瀛臺)에서 리자차오(李家超) 홍콩 행정장관의 연례 업무보고를 받았다. 중국중앙방송(CC-TV) 화면 속 시 주석은 일반 의자에 앉았다. 지난해 앉았던 용을 조각한 용의(龍椅)는 보이지 않았다.   20차는 상무위 7석을 석권한 시진핑 사단의 압승으로 끝났다. 반면에 양개확립과 인민영수가 사라졌다. ‘시진핑 사상’은 격상에 실패했다. ‘팀킬’ 당한 공청단파가 용어 저지와 자리를 맞바꾼 ‘빅딜’ 가능성이 있다. 물론 겸허하게 자제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폐막 두 달 만에 시위와 감염, 불경기로 당의 권위가 상처를 입었다. 선거 아닌 업적 정통성에 의지하는 중공식 정치의 위기다. 5년 뒤 21차는 이번 수수께끼를 풀어줄까. 신경진 / 베이징총국장J네트워크 인민영수 대회 정치보고 대회 문건 덩샤오핑 이론

2022-12-29

[J네트워크] 두 얼굴의 중국

지난달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우한을 찾았다. 코로나19 발생 2년 만이다. 최후의 승리까지 제로 코로나를 실행할 능력과 실력이 있다고 했다. “인구 많은 중국이 만약 ‘집단면역’ ‘당평(?平·평평하게 눕기)’ 같은 방역 정책을 취한다면 후과는 상상 못 한다”며 “잠시 경제 발전에 영향을 끼쳐도 인민의 생명과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없다”고 했다. 또 “제로 코로나는 당 중앙이 확정했다”며 경제 아닌 정치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베이징 일인자 차이치도 나섰다. 지난 27일 시 당 대회 정치보고에서 “추호도 흔들리지 않고 제로 코로나 견지”를 선포했다. 정치보고는 미래 5년 청사진을 담은 강령성 문건이다. 당 중앙을 따르겠다는 충성 맹세다.   그러자 14세기 ‘제로 페스트(흑사병)’로 방역 성공의 패러독스에 빠졌던 명(明)나라를 다룬 역사책 두 권이 회자한다. 오카모토 다카시 교도부립대 교수는 5월 출간한 ‘명대란 무엇인가’에서 “명을 건국한 주원장은 천자·황제로서 서민까지 직접 장악을 궁극의 목적으로 했다”며 “교육칙서인 육유는 ‘마오쩌둥 어록’ ‘시진핑 사상’ 같은 세뇌(indoctrination)로 이어진다”고 썼다. 저자는 “명 왕조 300년 동안의 정치·경제·사회 체제가 현재와 구조적으로 연결된 부분이 적지 않다”며 “현대 중국이 지금 같은 체제와 언행을 하는 것도 역사적 배경과 유산의 작용”이라고 알려왔다.   중국 학자도 명나라에 주목했다. 자오셴하이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갈림길의 명조’(2021)에서 ‘두 얼굴의 중국’이란 분석 틀을 제시했다. “당시 민간은 세계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지만, 정권은 새로운 사조에 흔들리지 않고 거대한 전통과 관성을 고집했다”고 했다. 명 말기 중국 강남지역의 상품경제는 초기 세계화된 경제 시스템을 이끌었지만, 정치는 변방의 위기가 부른 재정 위기로 농업세를 올리면서 사회 불안과 군대·농민의 봉기를 야기했다. 사회의 번영과 국가의 쇠락, 민간의 활력과 정치의 경직화를 고질적인 중국의 두 얼굴이라고 묘사했다.   홍콩의 평론가 위안미창은 오카모토와 자오를 인용하며 “시진핑과 리커창이 각각 정치와 경제를 강제로 가르고 심지어 대립하는 이면을 보면 과거 왕조의 낡은 길로 가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중국의 역사는 줄곧 정치가 경제를 압도했다. 신냉전의 시작이라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중국은 역사의 윤회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는 중국의 과제이자 인류의 숙제이기도 하다. 신경진 / 베이징총국장J네트워크 중국 얼굴 정치가 경제 대회 정치보고 사회과학원 연구원

202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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